용서받을 수 없는 죄  -  창조하는 생활로 성장을 이루며 살아가야할 이유

 

우리가 갖가지 잡념에 시달리며 유혹을 받고 괴롭다면

우리가 꼭 해야할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지않아,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창조하여 소유하고 있는 몸과 마음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참으로 섬세하고 예민하다. 또한 정교하고 유연하다.

뿐만아니라, 수많은 기능이 있고 무한에 가까운 능력도 잠재되어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진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정교하고 유연하고 수많은 기능과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이러한 몸과 마음이 하기에 적당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파괴적이기 보다는 창조적인 일이다.

경쟁과 전쟁보다는 사랑과 조화일 것이다.

노예적이고 기계적이기보다는 주인적이며 자주적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인정신과 창조의 능력으로 사랑하지 않고 산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되는데, 처음에는 정신적 균형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잡념, 오해, 갈등, 걱정, 근심, 불안, 초조, 공포 등등 수많은 혼란이다. 그리고 서서히 육체적 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정신적 갈등, 육체적인 병은 파괴적인 경쟁과 노예근성으로 반목하는 기계처럼 살아서 생긴 것이거나

 

주인정신으로 창조적인 사랑을 하지 않아서 생긴 벌이다. 

 

우주에는 사람을 포함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거나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많은 생명들은 모두 타고난 능력이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타고난 능력의 차이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모두 쓰고 있느냐, 아니면 사장시키고 사용하지 않느냐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따져서 타고난 능력을 다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

 

타고난 능력을 다쓰는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창조적인 일에 정신이 일도되어서 잡념이 생길 틈이 없을 만큼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능력을 다쓰는 것에도 만족을 해서는 안된다. 타고난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나온 능력이 100이라면 110을 만들며 사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사는 방법은 우주 역사에 그 어떤 생명도 창조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사는 것이다. 그 창조는 바로 새로운 육체창조이다. 새로운 육체창조, 세상창조 그것이 바로 우주창조이다.

 

잡념에 시달리며 모방적이고 파괴적이며 반복적인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무리 많은 능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고 산다면 행복할 수가 없다.

 

비록 적은 능력을 타고나더라도 그 능력을 키우며 살 때 행복한 것이다.

 

 

  since 1986  BAEKSEOK BITSOGUM   TEL 041 857 1817  FAX 041 857 1811

  • White Facebook Icon
  • White Instagram Icon
  • White Pinterest Icon
  • White Twitter Icon
  • White TripAdvisor Icon
This site was designed with the
.com
website builder. Create your website today.
Start Now